2010년부터 새로 도입되거나 바뀐 제도들로 인해 한의계는 환자 진료와 한방의료기관 경영 등에서 여러 변화를 겪고 있다.
가장 핵심이 되는 항목은 역시 통계청이 주도한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 (KCD-5) 코드의 한의학 연계를 골자로 한 ‘한의표준질병사인분류 개정’이며, 다음은 복지부의 ‘의료서비스산업 선진화 추진’에 의해 ‘의료법 시행규칙’이 일부 개정됨에 따라 도입된 의사·한의사 상호 고용과 한·양방협진 진료일 것이다.
먼저 ‘한의표준질병사인분류 개정’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면, 한방의료기관에서 사용하는 진단 근거를 현재 양방의 진단 기준인 KCD로 통합하고, 일부 한의학 고유 영역의 병명들은 국제질병사인분류(ICD-10) 중 해당 국가 고유 질병명 등록 등을 위해 비워 놓은 U-code에 추가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런 변화는 국가의 질병 통계를 담당하는 통계청 등 정부 기관의 지속적인 요구에 한의계가 부응하는 것으로, KCD 진단의 근거가 되는 각종 현대 장비의 사용 권한을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 ‘의료법 시행규칙 일부 개정’은 한의사와 의사, 치과의사가 동일 기관에서 상호 고용이 가능하고, 각 질환들에 대해서 해당 양·한방 진료 과목들의 협진에 따른 새로운 진료 패러다임의 창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물론 기존에도 대학 부속 한방병원 같은 기관에서 한·양방협진이 부분적으로 이루어져 왔으나, 각 의료기관을 독립적으로 개설 신고해야 하고 환자들이 같은 날 동일 상병으로 양·한방 진료를 모두 받을 경우에는 요양 급여가 제한되는 등의 규제를 받아 왔다.
만일 협진 진료 형태가 활성화 된다면, 아직 개원하지 않는 한의사들에게는 협진 병원에 취업하는 기회가 주어지고, 이는 한의사에 대한 새로운 영역의 고용 창출이 기대된다. 또한 기존 진료보다 협진 진료가 더 효과가 우수하다는 것이 연구 등을 통해 입증된다면,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의 환자 유치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모든 정책들과 마찬가지로 이상의 두 가지 제도적 변화가 한의계에 반드시 좋은 영향만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다.
‘한의표준질병사인분류’와 관련하여 정부는 이제 한방과 양방의 진료에 대해서 KCD-10으로 통합된 표준임상진료지침을 고려할 수 있다. 한방에서 다빈도 상병이었던 ‘요각통’이나 ‘중풍’ 등이 이제는 ‘척추 디스크’나 ‘뇌경색’ 같은 양방 상병명으로 통합되어 건강보험 예산이 집행되므로, 동일 상병에 대한 양·한방의 다른 진료 행위 수가나 결과들이 정부 기관의 데이터베이스에 자료로 남게 된다. 따라서 다빈도 약재나 의료행위에 대해 경제성 평가를 시행하는 정부에서는 영국이나 독일 같은 나라들처럼, 한방 의료행위에 대한 비용 효과성 자료를 비교 분석할 여지가 있다. 다행인 것은 최근 정부 지원에 의해 진행되는 한의학 연구들 중 주요 질환들에 대한 진료지침 개발 연구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이를 대비한 근거 수립이 가능할 수 있으며 또한 반드시 필요할 것으로 사료된다.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에 의해 의사·한의사 상호 고용이 가능해진 현 상황에서, 이 제도의 영향이 어느 단체에 더 미칠지는 두고 봐야 한다.
한방 진료를 활성화하기 위해 의사들을 고용하는 한의원과 한방병원이 늘어날 지, 병원 진료를 활성화하기 위해 한의사들을 고용하는 의원과 병원의 수가 늘어날 지는 모를 일이다. 어떤 결과든지 간에 한의사들의 고용 창출의 효과는 있을 수 있겠지만, 자칫 일선 개원 한의사들의 경영 여건이 영향을 받을 여지가 있다.
일반 상점으로 비유하자면, 기존의 중소 상가 주변에 백화점이 들어오느냐 혹은 중대형 할인마트가 들어오느냐에 따라 상권에 미치는 영향이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협진 병원이 한·양방협진에 대해 백화점식 가격을 책정한다면, 주변 한의원들의 입장에서는 기존의 의료 수요층을 유지하여 경영에 영향을 덜 받겠지만, 환자들의 입장에서는 의료비의 과다한 지출이 유발되고 결국 전체적인 수요는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만일 할인마트 식의 수가를 책정한다면 환자들 입장에서의 의료비는 절감되지만, 주변 한의원의 경쟁력은 약해질 수밖에 없으며, 정부에서도 불필요한 의료 사용의 증가로 지출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이런 상황들을 고민해야 하는 이유는 양·한방 협진 의료 수가가 현재 비급여로 책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비급여 항목은 각 의료기관에 따라 수가 책정을 비교적 자율적으로 할 수 있으며, 백화점이나 할인마트 중 어느 방향으로 수가를 책정하는가에 따라 그 영향이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그러므로 현재의 비급여 상태를 급여 항목으로 전환하여 협진 수가에 대한 일정한 수준의 규제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사료되며, 바로 여기에 사용될 수 있는 연구 방법이 경제성 평가이다. 급여 전환시 필요한 근거 자료를 해당 기관에 제시하여 합리적인 급여 비용을 책정한다면, 높은 의료수가로 인한 환자 부담이나, 낮은 수가의 끼워 팔기식 의료 행위를 모두 예방할 수 있으며, 이는 결국 제도를 도입하고 시행한 정부의 근본 취지와도 부합된다고 하겠다.
마지막으로 본인이 가지고 있는 ‘신의료기술’을 보험 급여 항목에 추가하는 것을 목표로 연구하는 회원들의 경우에도, 기존 의료 행위와 대비한 비용 효과분석 등의 경제성 평가는 필요한 항목이다.
경제성 평가는 일선 의료인들에게는 아직 낯설게 느낄 수 있는 영역이다. 그러나 변화하는 의료 환경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합리적인 예측이 한의학을 지켜낼 수 있으며, 이를 위해 경제성 평가는 반드시 우리가 알아야 할 분야라고 사료된다.